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
현상학의 창시자로 독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할레 대학의 강사, 괴팅겐 대학의 강사와 교수,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를 거쳐 은퇴 후 오히려 더욱 왕성한 의욕과 새로운 각오로 연구와 강연에 매진하면서 죽는 날까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자신의 유언 그대로, 진지한 초심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수행한 말 그대로 ‘철학자’ 자체였다.
이 50여 년의 외길 삶은 이론과 실천, 가치를 포괄하는 보편적 이성을 통해 모든 학문의 타당한 근원과 인간성의 목적으로 되돌아가 물음으로써 궁극적 자기책임에 근거한 이론(앎)과 실천(삶)을 정초하려는 ‘엄밀한 학문(strenge Wissenschaft)으로서의 철학’(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을 추구한 것이다. 그 방법은 기존의 철학으로부터 정합적으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어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사태 자체로(zur Sachen selbst)’ 되돌아가 직관하는 것이다.
이 이념과 방법은 철학의 참된 출발을 부단히 모색해 갔던 험난한 구도자의 길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초기 저술의 정태적 분석과 후기 저술이나 유고의 발생적 분석에서 드러난 모... 현상학의 창시자로 독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할레 대학의 강사, 괴팅겐 대학의 강사와 교수,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를 거쳐 은퇴 후 오히려 더욱 왕성한 의욕과 새로운 각오로 연구와 강연에 매진하면서 죽는 날까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자신의 유언 그대로, 진지한 초심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수행한 말 그대로 ‘철학자’ 자체였다.
이 50여 년의 외길 삶은 이론과 실천, 가치를 포괄하는 보편적 이성을 통해 모든 학문의 타당한 근원과 인간성의 목적으로 되돌아가 물음으로써 궁극적 자기책임에 근거한 이론(앎)과 실천(삶)을 정초하려는 ‘엄밀한 학문(strenge Wissenschaft)으로서의 철학’(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을 추구한 것이다. 그 방법은 기존의 철학으로부터 정합적으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어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사태 자체로(zur Sachen selbst)’ 되돌아가 직관하는 것이다.
이 이념과 방법은 철학의 참된 출발을 부단히 모색해 갔던 험난한 구도자의 길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초기 저술의 정태적 분석과 후기 저술이나 유고의 발생적 분석에서 드러난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것들은 서로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건물에 대한 평면적 파악과 입체적 조망처럼,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보완 관계이다.
수학의 기초를 논리학에서, 논리학의 기초를 인식론에서 찾았고, 또 이 기술(記述)적 현상학을 정초할 선험(先驗)적 현상학을 해명했던 그는 생전에 『산술철학』(1891), 『논리연구』(1900∼1901),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1911),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제1권(1913), 『형식 논리학과 선험 논리학』(1929), 『데카르트적 성찰』(1931),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1936)을 남겼다.
후설 현상학은, 객관적 실증과학을 극복할 새로운 방법론으로 간주되든 독자적 철학으로 간주되든, ‘현상학 운동’으로 발전해 가면서 실존주의·인간학·해석학·구조주의·존재론·심리학·윤리학·신학·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문화예술 전반에 다양하게 응용되면서 강력한 영향을 지금도 미치고 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유고(유태인 저서 말살 운동으로 폐기될 위험에서 구출된 약 4만 5000장의 속기 원고와 1만여 장의 타이프 원고)는 벨기에 루뱅대학의 후설 아카이브(Husserl-Archiv)가 1950년부터 후설 전집을 출간한 이래 2005년 제38권까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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